안녕하세요, 정한새(케이)와 시엘라입니다. 2022년 3월의 마카롱 주제 <마지막으로 보는 바다가 될 것이다>를 끝으로, 저희의 마카롱 교습소 글쓰기 프로젝트가 종료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희는 서로의 지치지 않는 연성을 독려하기 위하여 느린 글쓰기를 표방하는 <마카롱 교습소> 포스타입을 만들고, 정기적으로 같은 문장을 활용한 짧은 소...
여자는 눈을 떴다. 낡은 야광별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바랜 깜박임을 보내고 있었다. 여자는 수신호를 들은 사람처럼 느리게 눈을 깜박이고, 모스 부호를 보내듯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야광별은 곧 수명이 다할 듯했다. 태어나고 빛나고 사라지고, 그런 점에서는 진짜 별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여자가 덮은 얇은 차렵이불에서는 담배 냄새가 났다. 이러다가 ...
유안은 청첩장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얼마나 많이 봤는지 이제는 무슨 글씨체로 작성했는지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비 신랑이 그렸다고 한 그림이 청첩장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표지를 펼치면 보이는 양면 중 왼쪽에는 식장의 약도와 주소, 일자가 쓰여 있었고 오른쪽에는 초대하는 말이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잡고 한 길을 걸어...
먼 예전에 그런 여자가 있었어. 이곳에 살다가 저곳으로 떠나간 최초의 여자. 폭풍우가 치는 밤에 만난 한갓 사람에 홀려 평생 살던 바다를 떠나 말도 숨도 쉴 수 없는 곳에서 바싹바싹 말라간 여자. 평온을 살 수 있는 지금을 버리고 한 번도 간 적 없던 고통을 찾아 떠나다니, 어리석지. 떠나간 여자, 어리석은 여자, 자신의 모든 바다를 던지고 도망간 여자, ...
은진은 문 닫은 도서관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건물 2층 어딘가에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불빛은 직원들이 일하는 공간일 터였다.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은진의 유일한 도피처도 문 닫는 기간이 길어졌다. 처음 한두 주 정도는 휴관일 때 하듯이 카페도 가고, 영화관도 갔지만 매일 그럴 수는 없었다. 은진이 가진 돈은 한계가 있었고, 돌아다니다가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라...
연애란 것은 몇 번을 해도 쉬웠던 적이 없었다. 다른 인간관계보다 배는 힘들면서, 얻는 것은 반비례했다. 사랑이 나를 살릴 것처럼 충만한 때야 당연히 있었지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배고픔을 해결해주진 못했다. 그렇더라도 사랑은 사랑이었고, 인생의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자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무엇이었다. 게다가 사랑은, 사람이기도 했다. 정한은 문득 그의...
나뭇가지에서는 쓴 맛이 났다. 그가 그곳의 새 주인으로 왔을 때 나는 방을 치우는 중이었다. 점심으로 먹은 샌드위치가 속에 얹혀 소화에 좋다는 메릴 열매의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한창 이불을 털고 있었다. 그는 비둘기색 카디건을 걸쳐 입고, 물 빠진 청바지에 매끈한 은빛의 휠체어를 끌고 나타났다. 오후 네 시쯤 오겠다더니, 연락도 없이 느지막한 점심때쯤 나타...
“살려줄까? 개처럼 멍멍멍 짖고 제자리에서 다섯 바퀴 돈 뒤 만세 삼창 후 저는 천하의 개쓰레기이며 조상 선산에 큰 죄를 지었습니다 외친 뒤 다시 고양이 울음소리 냐옹냐옹냐옹 열 다섯 번 울고 내 발등에 입 맞춘 다음에 알몸으로 네가 지금까지 저질렀던 모든 죄를 고백하고 피해자들에게 네가 가진 모든 재산 다 처분해서 피해 보상하고 서울 가서 한강에 빠...
“오늘 아침에 요정을 봤어요.” 탕, 숟가락이 나무 식탁에 떨어졌다. 떨어진 건지, 세게 내려친 건지. 나는 숟가락을 쥔 여자의 손을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여자는 잠깐 멈춰 있었다. 새는 밤바람에 촛불이 흔들렸다. 그림자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할 때마다 여자의 무표정한 얼굴이 뒤죽박죽 변하는 것 같았다. 여자가 말했다. “그랬구나.” 삼월의 숲에서...
똑똑. 나무 창틀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타격에 울었다. 연주는 잠시 상반신을 일으켰다가, 잘못 들었으려니 생각하고 다시 모로 돌아누웠다. 새 소리도 들리지 않는 깊은 밤이었다. 누가 저를 보러 부러 여기까지 온단 말인가? 똑똑. 연주는 깜짝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불이 흘러내려 한기가 돌았다. 초도 켜지 않아 사리 분별도 어려운 야심한 시각이었다.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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